기괴•갬성 단편소설

흑백의 집이 있었다. 집주인의 마음대로 색이 바뀌는 집이었다. 집주인은 여자였는데 자신의 집을 오로지 검정과 하양으로 규정했다. 검정이거나 하양이어야 했다. 검정에서 하양으로, 하양에서 검정으로 바뀔 수는 있었다. 하지만 두 개가 섞일 수는 없었다. 집에 회색은 없었다. "검정이면 검정인거고 하양이면 하양인거지. 두 개가 어떻게 섞여?" 여자는 변덕스러워서...

다리가 튼튼한 로봇

다리가 튼튼한 로봇 세상에서 제일 착한 로봇이 있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착한 로봇이었죠. 하루는 생쥐가 로봇에게 찾아와서 말했어요. "문을 고정할 나사가 필요해. 혹시 새 나사를 찾을 동안 네 것을 빌려줄 수 있니?" "좋아." 로봇은 왼쪽 다리의 나사 하나를 빼서 생쥐에게 주었어요. 어느 날은 고양이가 로봇을 찾아왔지요. "창문을 고...

초초초단편 초저퀄의 우울한 글

크리스마스 누가 그랬다. “크리스마스나 명절 같은 때에 사람들이 더 많이 자살한대. 평소엔 외로운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외로움이 확 와닿거든.” 맞는 말인 것 같다. 내가 지금 행복대교에 와있으니까. 자살하기 전 징조를 찾아본 적 있다.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뜬금없이 안부 인사를 한다고 했다. 신변정리도 한다고 써있었다. 그걸 읽고 비닐도 ...

2. 전과자 신철현

더 큐어 2. 전과자 신철현 오늘도 세진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빌딩으로 들어와 15층의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왔다. 사무실 밖에서도 박 과장의 코고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그녀는 잠시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침에 그녀는 500ml짜리 생수 두 병을 주섬주섬 가방 속에 넣었다. “인간적으로 너무 찌질해.” ...

1. 회사원 정민지

더 큐어 1. 회사원 정민지 더 큐어. 세계적인 규모의 대기업이자 세상 젊은이들이 입사를 꿈꾸는 그 곳. 제약 회사라고만 알려져 있는 더 큐어는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나 채용 과정 등 회사에 관련된 모든 것이 베일에 쌓인 기업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더 큐어에 현재 다닌다는 사람도, 다녔다는 사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비밀스러움은 이 기업을 보다 매력...

아주 짧은 소설

잿빛 세상 나에게 세상은 늘 잿빛이었다. 우울해서 그런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나에게 세상이 잿빛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색맹으로 태어났으니까. 세상은 정도가 다른 검은색과 하얀색의 조합이었다. 누군가 아름답다고 예찬했던 푸르른 하늘도 녹색의 숲도 나에겐 그저 모두 같은 잿빛이었을 뿐이다. 이 잿빛 이라는 단어 역시 엄마가 알려준 것이다. 엄마는 너의 세상이...

망해버렷어요 엉엉 노잼주의 후기로 곧바로 가셔도 됨

별의 파수꾼 3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자율 학습을 하려고 남은 몇몇 아이들을 빼고 학교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초코 우유를 마시며 학교 뒤 벤치에 앉아있었다. “인생...” 나는 고등학생 2학년이 되어 새롭게 맞이한 인생에 대해 고찰 중이었다. 가령 다음 주의 급식 메뉴라든지 방학 때까지 평일에 끼어있는 공휴일의 수라든지. 딱 그 나이 또래 애들이 할...

복도가 긴 집 이사를 했다. 한때 살았던 곳이었다. 재개발이 진행된 ㅁㅁ동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들쭉날쭉 높이가 제각각이었던 빌라와 단독주택은 대부분 사라지고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새로 생겼다.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 끝났어?” “응 한 시간 정도 전에 다 끝나서 지금은 나머지 정리 중이야.” “아휴 너는 왜 독립...

누군가의 이야기

치료 워낙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잘 받는 타입이긴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부쩍 심해졌다. 잠에서 자주 깼고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가족부터 시작해서 직장 상사 등등 여러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중 하나는 G에 대한 악몽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중학생이다. 그리고 내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G, 같은 반 친구다. “도와줘.” G는 ...